2017년 12월 23일 토요일

춤을 추려면 꼭 대학에 가야 하나요?

요즘 서울의 한 실용무용 학원장의 제자(원생) 성폭행 사건이 발생, 수사가 진행되며 세간이 떠들썩하다.
뉴스에 따르면 해당 학원장이 학생에게 대입 실기시험에서 보통수준의 성적을 내기만 한다면 자신의 인맥을 이용하여 입김을 넣어 원하는 대학을 보내줄 수 있다며 자신과 함께 술을 마시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학생은 그런 원장의 힘이 무서워서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을까봐 어쩔 수 없이 원장과 술자리에 동석했다고 한다
해당 학원장은 학생을 자신과 함께 술을 마시도록 하여 정신을 잃게 하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성폭행 했다고 한다. 현재 학원장은 합의하에 이뤄진 성관계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사를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SNS(사회관계망)을 통해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대부분 분노하고 있었다. 당연히 분노해야 할 일이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 학원장은 마땅히 비난받고 벌 받아야할 사람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성폭행 사건 한 가지로만 보고 분노만 하면 되는 걸까? 우리가 좀 더 자세히 살펴봐야할 것들을 그냥 지나치고 있는 건 아닐까?
몇 가지 자세히 살펴보고 공론화하여 이야기 해봐야 할 것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대입열풍과 학구열은 전 세계에서 최상위에 놓일 만큼 뜨겁다
시험성적과 대입합격여부로 자살하는 학생들의 뉴스를 매년 들을 만큼 심각한 문제이며 이는 많은 이들의 관심의 대상이다
필자가 대입을 준비하던 1999년 그리고 이미 그보다 훨씬 전부터 대입부정 사건은 신문과 뉴스의 단골 소재였을 만큼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억대의 금품을 담당교수에게 제공했다거나 학연, 지연 등을 통한 청탁이 오갔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라고 궁금하기도 하고 상상하기 힘든 액수의 금품 그리고 다양한 방법의 비리행위들에 놀라기도 하며 실소를 금치 못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어이가 없을 만큼 영향력이 없는 교수도 아닌 시간제 강사였던 학원장이 스스로 교수라 칭하며 단순한 말 몇 마디로 학생을 유인해 내어 범죄를 저지른 이번 사건은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이런 범죄가 가능했던 이유를 한마디로 말해보자면 대학입시가 아닌 대학입시이다
학생이 지원하려던 학교는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 4년제 대학교나 전문대학이 아닌 학원(대학)재단에서 운영하는 학점은행제 평생교육원이다
대학에서 운영 중인 학원인 것이다
과연 학생은 이런 내용을 알고도 원장의 말에 흔들렸던 것일까
그리고 학생의 부모님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자녀의 대입준비를 위해 학생을 해당 학원에 보냈던 것일까?
 
요즘 온라인에서 유명대학들의 이름을 내걸고 실용무용학과 신입생을 모집하는 광고를 많이 볼 수 있다
점점 더 많은 학교재단이 일반학과보다 좀 더 쉽게 열고 좀 더 쉽게 닫을 수 있는 그리고 수익성이 높은 학점은행제 평생교육원에 실용무용학과를 편성하여 운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비례해서 대입합격을 성공시켰다며 학원생을 모집하고 있는 댄스학원들도 많아지고 있다.
대입열풍이 거센 우리나라에서 공부하기 싫은 학생에게 공부하지 않아도 갈 수 있는 학교가 생긴 거고 부모의 입장에서는 대학입학을 하지 못할 것 같아 걱정하던 자녀가 대학졸업장이라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선뜻 실용무용 전공 입시에 대해 알아보게 된다
더구나 학과 성적이 좋지 않아도 실기시험 만으로 입학할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으며 유명대학의 타이틀을 앞에 내세우고 있는 그들의 달콤한 말을 믿고 지원하는 경우가 다수이다.
물론 해당 교육원 역시 2년 과정이나 4년 과정 등의 학기과정을 수료하면 이수학점을 얻게 되고 일반대학의 학사학위와 동등한 학력이 인정된다. 이때 받는 수료증이나 졸업장은 물론 일반 대학의 개설학과 졸업장과는 다르다
학점은행제 평생교육원, 즉 학교재단의 학원이기 때문이다. 일부 평생교육원은 해당학교 총장 명의의 졸업장이 수여된다는 점을 강조하여 홍보에 사용하며 이러한 사실은 덮어두기도 한다.
일부 학교는 평생교육원임을 CI(로고) 등에 명시하고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곳들도 있다. 간혹 해당문제로 조금씩 말이 나오자 슬그머니 작은 글씨로 교육원임을 기록한 곳들도 있다.
S모 직업학교의 경우 학교 명칭에 예술학교 임을 강조하고 직업학교라는 상반된 느낌의 단어를 지우기 위해 이사장이 국회의원에게 입법청탁을 벌이다 검찰에 기소되기도 했다.

실용무용학과의 발생 초기,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학과를 개설하고 운영하려다 보니 활동 중인 댄서들과 당시 유명세를 누리던 댄스학원들이 평생교육원과 함께 학과 개설을 주도해 나갔다. 따라서 운영인력과 교수인력 모두 학원의 협조가 필요했고 대부분의 인원을 해당 학원의 운영진이 기획, 배치했다.
그래서 학원에서 춤을 배워 대입준비를 했던 학생이 해당학원의 강사가 평가하는 학교(교육원) 실기시험장에 들어가서 시험을 보고 합격하는 말도 안 되는 일도 매우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학생들도 이를 대부분 알고 있었다. 소위 ‘A 학교에 가려면 학원을 다니고 B교에 가려면 S학원을 다녀라.’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이 같은 우스운 일은 아직도 벌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학교와 연결되어 입시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학원들은 일반대학에 실용무용 TO(모집인원)이 있고 자신들이 학생을 입학시켜줄 수 있다고 설득한다
하지만 일반학과와 평생교육원의 차이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학생이나 학부형이 이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질문하거나 문제가 됐을 때 마지못해 얘기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당연히 심사를 강사 본인(혹은 관련자)가 보는데 합격시켜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정말 말도 안 되고 우스운 이야기다.
 
또한 해당학교(교육원)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소위 교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일부 핵심인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간제 강사들이며 여러 곳의 학교(교육원)에 출강하고 있다. 그리고 일반학원 등지에서도 다수의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대학의 교수들이 일반 입시학원이나 보습학원에서 수업을 개설해서 수업을 진행하는 일은 볼 수 없다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강의와 연구업무만으로 벅찬 교수가 일반학원에서 수업을 진행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는 분명한 불법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해당기관이 일반학교가 아닌 평생교육원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대학에 고용된 시간강사가 여러 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는 있고 관례상 존중의 뜻을 보이기 위해 학생들이 그들을 교수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아직은 기반이 약한 해당학교(교육원)이 모집인원의 증대와 홍보효과를 위해 소위 스타댄서를 기용하여 1일 특강을 진행하거나 강사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을 모두 교수라는 타이틀을 붙여 커다랗게 홍보를 지속하고 있다
학교(교육원)은 시간제 강사이거나 1일 특강을 진행했던 인원에게도 교수라는 타이틀을 붙여 홍보를 지속하고 있었고 학교에서 자신도 교수라는 호칭을 들으니 처음에 언급했던 사건을 일으킨 학원장도 자신을 교수라 칭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점을 이용해서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다.
 
필자 역시 평생교육원에서 강사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학생들이 교수라 부르는 것이 부끄러워 선생님이라고 불러달라고 했었다. 얼마 안 되는 수업시수에 따른 급여를 겨우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교수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권위를 뽐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했었다
또한 해당 학교의 시설과 관리가 너무 열악해서 매번 음악을 틀기위해 오디오플레이어와 스피커를 찾아 다른 강의실을 헤매는 말도 안 되는 사건들도 자주 겪었다
학교 측에 매번 요청하고 건의했지만 어쩔 수 없다.’라는 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학생들은 일반대학의 예체능계열의 등록금과 비슷한 수준의 등록금을 내고 있었다
필자가 대학시절 누렸던 캠퍼스의 낭만이나 다른 학과의 수업을 들으며 교양을 쌓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여러 분야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금액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겉으로는 최고의 전문가 양성 학교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는 곳에서 말도 안 되는 높은 금액의 등록금을 학생들에게 받으면서도 음악을 틀 수 있는 스피커가 없어 학생들이 직접 수업시간마다 오디오를 찾아 헤매도록 만들고 있으니....... 
그 속에서도 수업을 들으려는 무용과 학생들의 모습 그리고 억지로라도 수업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한 없이 슬퍼 헛웃음만 나왔다
그리고 지금껏 해 온 것들이 아쉽고 낸 돈이 아쉬워 학교를 다닌다는 학생들의 말에 춤을 추는 선배로서 마치 필자의 잘못인 것과 같은 커다란 죄책감이 들면서 미안했다.
 
이들의 문제점은 이 것만이 아니다.
해당학교(교육원)에서 실용무용을 담당하던 교수와 강사가 신설된 타기관(교육원)으로 이직하자 학생들이 함께 그 곳으로 떠나는 경우도 생겨났다
학생의 멘토이자 조력자인 선생님과 함께 하는 것은 좋지만 학교를 옮기는 것과 같은 중대한 일이 너무도 쉽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많은 걱정이 들었다.
Y대학의 이름을 앞세워 만들어졌던 평생교육원의 경우는 개설된 지 몇 학기 지나지 않아 C대로 편입되어 이름을 바꿔 운영되었는데 이 역시 필자를 많이 놀라게 했다. 대단히 중대한 사안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고 있었고 학생들로서는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 없었다.
이 밖에도 H대학의 경우 실용무용과정이 개설되었다가 모집정원이 모자라서 다시 과정을 없애고 해당 전공자들을 전혀 연관성이 없는 학과로 이전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해당 교육원은 얼마 전부터 실용무용학과 신입생을 모집해서 다시 운영 중이다.
M대학 평생교육원의 경우 실용무용학과가 2개 이상 동일 법인내의 각기 다른 학과를 통해 개설되어 학생들의 혼란을 초래, 결국 1개 학과 과정이 문을 닫았다. 필자가 학생 진로 지도 시 항상 주의하라고 당부했던 문제였다
해당 전공이 학교에서 쉽게 만든 것이라 수익성이 낮거나 문제가 생기면 쉽게 닫을 수 있다고 수없이 경고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평생교육원 실용무용전공자 중 상당수의 학생이 1~2학년을 마치기 전 휴학하거나 자퇴한다. 입학할 때 5개의 반이 있었다면 졸업학년에서는 1~2개의 반으로 축소되어 운영된다. 그래서 실용무용입시가 입학금 장사라는 웃기지 않은 농담 아닌 농담을 심심치 않게 듣기도 한다.
학교(교육원)이 과연 학생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가도 들여다봐야 할 문제인 것이다.
학생들을 이끌고 본보기가 되어야할 교수인원이 수시로 바뀌고 고가의 등록금을 내고 있지만 그에 맞는 학교생활을 누릴 수 없는데 어떻게 꿈을 이루겠다는 희망을 갖고 마음 편하게 학교(교육원)을 다닐 수 있겠는가?
사회적 지지기반이 약한 댄서(무용인)집단이 좀 더 인정받을 수 있고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는 틀을 갖는 것은 물론 찬성한다. 아니 필자 역시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춤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대부분의 걱정,
너 몇 살까지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아?”
돈도 얼마 못 버는 일을 왜 해?”
어른들의 걱정 그리고 내 자신의 걱정을 뚫고 시작한 이 일이 남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고 그만한 사회적 지위를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많은 선후배들이 활약하며 이런 인식들을 깨고 있어서 다행이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댄서들 스스로도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실용무용이 그렇게 발전하고 더 많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대입과정이 필요하고 평생교육원이 그 중간단계라면 나 역시 실용무용학과 개설과 운영에 찬성하고 싶다
물론 발레나 현대무용 그리고 한국무용 등과 같은 순수무용처럼 일반대학의 정식학과로 실용무용도 발전되어 함께 하기를 바란다
또한 실용무용을 전공한 댄서 중에서도 인정받는 교수가 많이 배출되고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기를 바란다
다만 그 과정이 지금처럼 학생을 착취하고 속이며 얻는 결과는 아니길 바란다.
과연 어렵게 고가의 등록금을 내며 학사학위를 받고 대학(대학이라 부르기 어렵지만) 졸업장을 받는 것이 정말 학생들 아니 새롭게 시작하는 댄서들에게 필요한가

우리가 키워내고자 하는 인재들은 무대에서 빛을 발하는 댄서인가 아니면 댄서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반짝반짝 빛나는 졸업장을 들고 있는 허울뿐인 학자인가?

댄서는 분명히 사회적 취약계층이다
유명한 아이돌가수의 안무를 만들거나 연말 가요대전의 메인무대 댄서로 수많은 카메라 세례와 관객의 함성을 받지만 제대로 된 계약서 한 장 받아보지 못하고 소위 인 연예기획사가 언제 바꿀지 모르는 일정에 따라 개인일정도 포기하며 이리저리 흔들리고 밤을 지새우며 피곤하게 일하고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급여를 걱정하는 일이 다반사인 사회적 취약계층이다. 그러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웃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우면서도 측은하다.
 
지금 학교(교육원)이 분명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실용무용의 미래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적어도 학생을 이용해 값싸게 무대인력을 충원한다거나 학생들의 성과와 활동만을 학교홍보에 활용하기 급급하지 않은 학교가 되길 바란다.
학교는 학생이 안무가와 댄서로서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 등 졸업 혹은 수료 이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제시해주고 더 좋은 무대와 전공을 살려서 활동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또한 계약서 작성, 실무에 필요한 법률 강의 등을 통해 춤을 계속 추고 댄서라는 전문직업인으로서 학생들이 나아가기 위한 무대 밖의 업무에 필요한 내용들을 배우고 경험하게 해줄 수 있는, 학생을 위한 학교운영을 통해 學校라는 이름과 어울리는 진정한 학교가 되어야만 한다.
 
범행을 저지른 학원장은 죗값을 분명히 치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학교는 그와 같이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학생들 혹은 다른 댄서들에게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도록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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